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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아 박용철 부인 임정희의 삶 ⑦

용아 박용철 부인 임정희의 삶 ⑦
- 송정여자중학교를 설립 기부
- 광주에서 ⌜신문학⌟ 잡지 발간,
- 원불교 정전 및 대종경 편찬에 공헌하다.
  • 입력 : 2023. 09.02(토) 09:37
  • 광산저널
[광산저널] ∎박용철 전집 발간
용아 박용철을 떠나보내고 임정희는 「여성동아」에 ⟨육아일기⟩를 게재하였고 「월간문예」지에 번역 시를 기고하기도 하였다.
1939년 임정희는 영랑 김윤식, 함대훈, 이헌구, 김광섭 등과 함께 ⟨박용철 전집 제1권, 시집⟩과 ⟨박용철 전집 제2권, 평론집⟩을 발간하였다.

∎원불교 정전 및 대종경 편찬에 공헌하다.

1943년 임정희 기족은 소촌리로 내려와 살면서 1944년에 박효진의 권유로 원불교에 입교하게 되어 1958년부터 2년 동안에 원불교 정전 및 대종경 편찬에 감수와 교정을 맡아 완간에 공헌하였고, 1982년에는 정식 법강항마위에 승급하는 등 1994년 87세의 나이로 영면하기 전까지 원불교 발전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 소촌리 마을에도 원불교를 지어 운영하기도 했다.

∎송정여자중학교를 설립 기부
소촌리에서 해방을 맞는 임정희는 우리 학생들이 일본의 국어 말살 정책 탓에 한글을 배우지 못한 것을 안타깝게 여겨 ⌜송정여자중학교⌟를 설립하여 국어와 영어를 가르쳤으며, 학교 교가를 작사, 작곡하였다. 그리고 이듬해 공립학교 승인을 얻어 기부하였다.
1948년 서울로 이주하여 1950년 9. 28 서울 수복 직후에는 김상돈, 고희동 등이 설립한 ‘애국부인회’ 회장으로 피선되었다. 1951년 1. 4후퇴 때 전남, 광주로 피난하여 ‘피난민연합회’ 이사를 역임하기도 하였다. 1952년에는 백선 육아원 원장으로 전쟁고아들을 돌보았고, 중앙학원을 설립하였다.

∎광주에서 ⌜신문학⌟ 잡지 발간,
임정희는 1954년 광주에 도서출판 ‘신문학사’를 차리고 종합문예지인 「신문학⟩(통권4호)을 발행하여 6.25 전쟁으로 피폐해진 한국문단의 명맥을 유지함과 동시에 지역 문화 발전에 이바지하였다. 1954년 학생지 「학원」을 발행하기도하였다. 광주전남 문단 형성은 광주에서 김현승 등이 발행한 문학지 「신문학」과 목포에서 간행된 종합문예지 「갈매기」 등을 중심으로 문단이 형성된 것이다. 전쟁의 상흔을 딛고서도 김현승, 서정주, 박흡, 이병기, 신석정 등의 걸출한 시인들이 이 지역에서 치열한 활동을 벌이면서 ⌜신문학⌟은 김현승이 편집을 맡아 순수문예지로서 범 문단적 성격을 띠게 되었다. 「신문학」은 서울의 문인들에게도 개방됨으로써 황순원의 단편소설〈소나기〉와 서정주의 시〈무등을 바라보며〉등과 같은 주옥같은 글이 실렸다.
4권으로 중단되었지만 1960연대 들어와서도 「신문학」은 1950년대의 명성을 이어갔다.⌟
임정희는 1994년 87세의 나이로 타계하기 전까지 교육사업과 출판사업을 통해 지역 문화 발전에 원동력이 되었으며 한국문학에도 기여한 바가 컸다.
용아 박용철과 임정희 여사의 민족문예운동의 결과는 우리나라 문학계의 새로운 패러다임(전환점)을 가져왔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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