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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대 송정리역은 새벽부터 여행객과 군인들 그리고 농산물 거상들과 주변 상인들로 인해 종일 붐비는 곳이었다. 거기에 ‘송정오일장’이 서는 날이면 더욱 분주했다. 이러한 번잡한 틈을 타서 생기는 불미스러운 일들도 많았다.
식당들의 호객 행위와 불친절로 생기는 불만 불편, 거리 잡상인들의 속임수, 술에 취한 주정뱅이들의 실수 등이 그치지 않았다. 특히 이런 와중에 소매치기(쓰리꾼)들이 스며들어 상시적인 활약으로 인해 피해를 보는 억울한 일이 벌어지곤 했다. 그들은 열차와 버스 안에서 대합실과 역광장에서 그리고 송정리 오일시장에서 극성을 부려 여기에서 발생한 비극적인 순간들이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이러한 불편과 피해를 본 전국의 지역 사람들에게 송정리의 이미지가 저주스럽고 씁쓸한 추억으로 남아있을 것이다.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송정리역만의 진풍경들이었다. 그로 인해 눈에 띄는 사람들이 있었으니 바로 역전 꼬마 삼총사를 떠올린다. 그 시절에 시외버스표를 팔면서 송정리역을 주름잡았던 작은 체구의 이식재, 그리고 역 앞 성인철공소 아들 조홍규, 쓰리꾼 대장 임종덕이다.
그들은 모두 키가 작아서 역전 꼬마 삼총사로 불렸다. 훗날 이식재는 재벌이 되었고, 조홍규는 국회의원, 임종덕은 미국 무기상 사장이 되었기에 이야깃거리가 된 것이다.
1. 송정역 골목대장 이식재, 재벌이 되다.
이식재는 동곡 가난한 집에서 살면서 어린 시절에 어등산에 땔감 나무하러 다니면서 배가 고파 황룡강에서 모래무지 물고기를 손으로 잡아 그대로 된장을 찍어 먹곤 했다고 하면서 고기를 한입에 넣고 씹어 먹을 때 모래무지 꼬리가 양 뺨을 때렸다고 회상하면서 웃음을 자아내게 했다.
그리고 어등산에 소나무 속껍질로 주린 배를 채웠다는 것이다. 청년 시절 송정리역 광장에서 시외버스표를 팔면서 힘깨나 쓰면서 역전을 장악할 정도였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친척인 이정휴 씨가 국회의원에 출마했을 때, 선거운동을 열심히 도와 당선이 되자, 서울로 올라가 비서를 하고 경찰직 공무원으로 채용됐다. 형사를 하면서 제법 실력을 인정받아 검찰청에 파견 나가 근무하면서도 이건개 검사 휘하에서 실력을 인정받기도 했다고 한다. 경찰에 근무할 때 서울 성동역 검문소에서 근무하면서 강원도에서 서울로 들어오는 목재 유통을 알게 되면서 서울에 목재소를 차려 돈을 벌기 시작하여 후일에 종합건설회사 주)일우공영을 창업해 강원도 대표 건설사로 우뚝 서게 됐다.
그리고 서울과 강원도 원주시에 어린이 놀이공원 ‘드림랜드’를 창업, 경영하면서 수백억 원의 재벌이 됐다. 이 회장은 어린 시절 가난해 배우지 못한 설움을 알고, 고향에서 공부 잘하고 가난한 중학교 입학생들에게 전액 학비를 대주는 장학사업을 펼쳤다. 중학교 때 잘하면 고등학교, 대학교까지 전액 장학금을 주었는데 그 수가 무려 300여 명이나 됐다.
2. 역 앞 철공소 아들 조홍규, 국회의원이 되다.
역 앞 성인철공소 아들로 광주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고려대학교 시절 민주화 학생운동을 하면서 정치에 입문해 고향 광산에서 12대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이어 3선 국회의원을 하고 한국관광공사 사장까지 역임하였다. 아이러니하게도 14대 국회의원 선거 때는 무소속으로 출마한 이식재 회장과 경합을 하기도 했다.
3. 쓰리꾼 대장 임종덕, 미국 무기상이 되다.
송정리역을 중심으로 호남선 쓰리꾼 우두머리 임종덕은 열차와 버스 그리고 송정오일시장에서 부하들과 소매치기를 일삼아왔다. 그 당시 사법당국에서 소매치기 소탕 작전이 시작돼 역전 파출소 박대균 소장은 송정리역 전을 장악하고 있던 이식재에게 임종덕이를 잡아달라고 부탁한다. 이식재는 임종덕이 수입 일부를 주겠다고 유혹하자 거절하고 송정리에서 떠나게 했다.
그 후 어느 때, 서울에서 한미연합사령부 미군 장교의 기밀 서류 가방을 소매치기를 당해 비상이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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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산저널 gsjn@daum.net
2026.10.21(수) 18:29















